정주영 출생과 사망
1915년 강원도 통천군(북한 관할) 출생-2001년 3월 21일(85세)사망
본관 하동 정씨
현대가는 이름에 돌림자를 넣는다.
1세대 영자 돌림, 2세대 몽자 돌림, 3세대 아들은 선자 돌림, 딸은 이자 돌림, 4세대는 아들은 창자 올림, 딸은 진자 돌림을 쓰고 있다.(하동 정씨 문헌공파 문중에서 정한것이 아니라, 재벌들이 자신들의 성씨 집단에서 정한 항렬자를 사용한 것이다.)
정주영 종교
원래 무교였으나, 임종직전 아들 정몽준의 권유로 세례를 받아서 개신교(하용조 목사)
정주영 학력
송전공립보통학교 졸업
정주영 아내/ 정주영 자녀
아내 변중석
자녀 8남 3녀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으로 기억되는 인물로, 보통학교를 졸업해 학력과 집안형편을 넘어서 현대그룹을 세운 거목이다.
내가 그 격동의 근현대사를 겪은 사람이 아님에도, 정주영 회장하면 산업화의 주역이며 성실함으로 개천에서 용난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은 알고있다.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아버지 정봉식, 어머니 한성실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6남 2녀)
젊은 시절 아버지가 소판돈 70원을 훔쳐 가출한 일화는 대단히 유명하다.
서울에서 경리 공부를 하다 아버지에게 도로 끌려가며 "대학 나온 놈도 실업자 되는 판에 너 같은 조선놈이 올라간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게 아니다. 그리고 넌 장남이고 농사를 지어야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후 다시 가출해 인천부둣가에서 막노동을 하며 서울에 정착했다고 한다.
신당동 쌀가게 복흥상회에서 점원으로 일하다 노름에 빠진 아들에게 실망한 쌀가게 사장이 성실한 정주영에게 가게를 매도하였다.
3년뒤 쌀가게를 '경일상회'로 차렸으나 일제의 쌀배급제 실시로 자연스레 가게 문을 닫았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꿈은 변호사가 되어 억울함을 겪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었다고 한다.
실제로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두차례 응시했으나 떨어졌다고 한다.
이후 돈을 빌려 아도 서비스(ART SERVICE)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세워서 크게 운영하였건만 화재로 건물이 타버리는 일이 생긴다.
이때 정주영이 쌀가게 일을 하면서 알게된 오윤근에게 찾아가 돈을 빌려달라면서 "여기서 내게 빌려 준 돈을 떼이면 당신 이력에 흠이 생기겠지만, 다시 빌려준다면 그 돈으로 재기해서 갚겠다"라고 했다.
당시 오윤근은 사람보는 눈이 좋아서 돈을 빌려주고 떼인 적이 없다고 한다.
하여 오윤근은 다시 한번 정주영을 믿고 돈을 빌려주었다.
1947년 미군정 말, 당시 은행에서 가장 큰 돈을 빌리는 사람이 건설업자가 많은 것을 보고 건설사를 세우기로 한다.
서울에서 건설회사인 현대 토건사를 세우게 된다.
정주영 회장 본인이 가지고 있는 성실함에 주한미군 통역장교로 복무한 동생 정인영의 도움으로 주한미군 관련 공사를 맡으며 창립 10년만에 전국 10대 건설사로 성장한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방한으로 한겨울에 UN묘지 잔디심는 것을 다른 업체에서는 모두 거절했으나, 정주영은 이를 받아들였다.
한겨울에 잔디를 심는 일은 불가 하므로, 트럭을 동원해 밭에 나있는 보리싹을 사다가 심어 행사를 마무리 한후, 봄이 되자 보리를 전부 갈아 엎고 다시 잔디로 심어 마무리 했다.
실로 감탄할만한 기지와 근성이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게 바로 정주영 회장을 가르키는 말인듯 하다.
이후 사업의 신용을 보여준 고령교 공사, 조선소 선립 등의 고비를 거쳐 현대그룹은 승승장구 하게 된다.
조선소 건립에는 박정희 대통령과의 일화가 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정주영 회장에게 조선소를 건립하라고 지시했으나, 정주영 회장은 이번만은 해결책이 없어 불가능하다고 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불같이 화내며 "무조건 해내라"라고 한다.
정주영 회장은 영구 바클레이스 은행과 4300만 달러 차관 도입을 협의했으나 은행은 최종적으로 거절한다. 이후 선박 컨설턴트 회사의 회장인 롱바텀을 찾아가 추천서를 받기 위해,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며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을 앞서 철갑선을 만들었다. 그러니 우리를 믿어달라며 결국 추천서를 얻어낸다.
롱바텀의 추천서를 받았음에도 바클레이스 은행에서는 배를 구매하겠다는 사람을 먼저 찾아서 배 주문서를 가지고 와라 라고 한다.
정주영 회장은 롱바텀에게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세계적으로 유명한 선박왕이다)의 처남 리바노스가 비싼 배를 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를 찾아간다.
그리고 26만톤짜리 선박 수주계약을 따내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계약금에 이자를 더 얹어서 주고, 배에 하자가 있다면 원금을 돌려준다는 말도 안되는 미친 조건이었다.
리바노스는 정주영 회장의 말을 듣고 조선소도 없는 정주영에게 수주를 준것이다.
정주영은 이에 "나보다 미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정주영 회장은 조선소도 없는 상태에서 선박계약을 따내고, 그걸로 돈을 빌려 조선소를 지은 뒤 선박을 만들어낸 것이다.
큰인물들은 뭔가 달라도 다른걸까, 무조건 해내라는 박정희 대통령도 그렇고, 그걸 하겠다고 나선 정주영 회장도 그렇고, 조선소도 없는 회사에 배계약을 준 리바노스도 전부.. 감히 범인으로서는 따라하지 못하는 다른 그릇을 지녔다.
모두가 안된다고 불가능 하다고 여겼을때, 정주영 회장은 이를 해낸것이다.
이후 1987년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대선에 참가 하였지만 김영삼이 당선되었고, 이후 선거운동을 도왔던 아들 고 정몽헌, 정몽준 회장과 함께 비자금 사건으로 수사를 받으며 정치에 손을 떼었다.
이후 대북사업에 관심을 쏟는데, 1998년 6월 16일 판문점을 통해 통일소로 불리우는 소 500마리를 북에 보내는 것은 세계적 주목을 받았고, 교과서에도 기록될 정도 였다.
현대판 왕자의난 이후(2남 정몽구 vs 5남 정몽헌), 3부자 동반퇴진을 통해 전문경영인 중심의 투명 경영을 말했으나, 바로 직후 2001년 봄 폐렴으로 인한 급성호흡부전증으로 사망하였다.
이 후 현대가는 현대, 현대백화잠,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으로 나뉘었다.
매년 정주영 회장을 기리며, 그의 기일에 생전 머물던 청운동 자택에서 후손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다, 현재는 한남동 정몽구 회장의 자택에서 제사를 지낸다.
정봉식(1884-1946)-한성실(6남 2녀 중 장남)
정주영(1915~2001)-변중석(1921-2007), 김경희(1953~차녀와 삼녀의 생모)
1남 정몽필(1934-1982 인천제철 사장)- 이양자(1943-1990)
1녀 정은희(1971~)- 주현(1967~ 전 현대ILH대표)
2녀 정유희(1973~)-김지용(1973~태아산업부사장)
1남 김진석(2000~)
2남 김진하(2003~)
2남 정몽구(1938~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이정화(1939-2009)
1녀 정성이(1962~이노션 고문)-선두훈(1957~ 영훈의료재단선병원 이사장)
1녀 선아영(1987~)-길성진(1985~ 배우 길용우 아들)
1남 선동욱(1988~)-채수연(1990~장영신 애경그룹 손녀딸, 애경 총괄 부회장 채형석딸)
2녀 정명이(1964~현대캐피탈.카드.커머셜 브랜드부문장)-정태영(1960~대표이사)
1녀 정유미(1989~)
2녀 정유진(1991~)
1남 정석준(1997~)
3녀 정윤이(1968~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신성재(1968 삼우 부회장): 이혼
1남 신우진(1993~)
2남 신우택(1996~)
3남 신우현(2004~)
1남 정의선(1970~)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대한양궁협회회장- 정지선(1973년생)
3남 정몽근(1942~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우경숙(1951~)
1남 정지선(1972~현대백화점그룹 대표이사 회장)-황서림(1972~)
1남 정창덕(2004~)
2남 정교선(1974~현대백화점 대표이사 부회장)-허승원(1975~대원강업 허재철회장 장녀)
3남
1녀 정경희(1944~)-정희영(1940~ 선진종합 회장)
1남 정재윤(1969~선진종합부회장)-김지향(1971)
1녀 정윤미(1971~)-박승준(1967~이건창호 사장)
2녀 정윤선(1975~)-남석우(1972~남영비비안 회장)
4남 정몽우(1945~1990 현대알루미늄 회장)-이행자(1945~)
정몽우가 일직작고, 정몽구 후견
1남 정일선(1970~현대 BNG스틸 대표이사 사장)-구은희(1976~LG가 구자엽딸)
1남 정창현(1998~)
1녀 정진주(1999~)
2남 정창민(2001~)
2남 정문선(1974~현대 BNG스틸 부사장)-김선희(1974~ 본태박물관장)
1녀 정진원(2004~)
3남 정대선(1977~현대 BS&C사장)-노현정(1979~kbs전 아나운서)
1남 정창건(2007~)
2남 정창성(2009~)
5남 정몽헌(1948~2003 현대그룹회장)-현정은(1955~현대그룹 회장)
1녀 정지이(1977~현대무벡스 전무)-신두식(1974~링크자산운용 부사장)
1녀 신혜윤(2013~)
2녀 정영이(1984~)
1남 정영선(1985~현대투자파트너스 이사)
6남 정몽준(1951~현대중공업 대주주 겸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김영명(1956~)
1남 정기선(1982~현대중공업 부사장 겸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 부사장)-정현선(1994~)
1녀 정남이(1983~아산나눔재단 상임이사)-서승범(1975~유봉 대표이사)
2녀 정선이(1986~)-백종현(1983~)
3남 정예선(1996~ 그유명한 정몽주니어)
7남 정몽윤(1955~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김혜영(1960~)
1녀 정정이(1984~)-김현강(1979~김인규 전 KBS사장 아들)
1남 정경선(1986~루트임팩트 대표)
8남 정몽일(1959~현대엠파트너스 회장)-권준희(1962~)
1남 정현선(1989~현대엠파트너스상무)
1녀 정문이(1991~)
2녀 정정인(1979~)
3녀 정정임(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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